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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by 홍스앤미니 2025. 4. 7.
서울 도심의 역사는 1394년 세워진 조선의 수도 한성부의 도성 내부 지역을 일컫는 한성부 성내 또는 '도성 안' 지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종각을 중심으로 육조거리의 관가와 운종가의 상업지역이 丁[A](정)자 형태를 이루며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도성 안 지역의 도심부 공간은 조선 시대 내내 큰 구조적 변화 없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일제 시대에 이 공간은 청계천을 경계로 하여 북측의 종로구와 남측의 중구로 강제 분할되었는데, 이는 북촌에는 조선인이, 남촌에는 일본인이 많이 거주한다는 고정관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년에 걸친 도성 안 공간의 유구한 역사는 종로구와 중구 경계에 걸친 도심부 지역을 일컫는 지명을 필요로 했다. 해방 후 미군은 이곳을 '다운타운 서울'이라 불렀으며, 전후 재개발을 거치며 이 지역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서울 도심이라는 지명을 얻었다. 해방 후 서울 도심은 서울의 유일한 중심업무지구로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중심지 역할을 맡았음에도 현대적 재개발이 지연되며 인프라에 비해 상주인구가 과밀한 상태였으므로, 1970~80년대의 도심 재개발 정책은 주거와 상업지역이 혼재된 도심에서 주거 수요를 몰아낸 뒤 균질한 업무지구로 바꿈으로써 과밀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 목표를 겨냥한 대표적인 재개발 정책 중 하나인 도심 내 명문고교들의 강남 지역 강제이전은 도심 주거수요를 억제하는 동시에 학교 및 상주인구가 떠난 공간에 업무용 마천루를 공급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후 90년대에 들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며 관광수요를 끌어들이자, 도심 재개발에는 문화경관의 복원과 보전이라는 새로운 화두가 등장했다. 1990년대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와 2000년대 청계고가도로 철거는 당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상징적 정책으로, 그에 따라 정비를 거쳐 탄생한 광화문광장과 청계천은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국가적 랜드마크가 되었다.